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코무로 테츠야 (문단 편집) === 1993년 ~ 1998년 === || [[파일:c1f4f524173c03a92c1a3915fb288b22.jpg|width=300%]] || || [youtube(zSs775pYNbc)] || [youtube(QGYfX8z4goE)] || || [youtube(DkCFIRXnyRU)] || [youtube(kMs3JIXeJ0Q)] || ||<-2> 코무로 붐 시절 밀리언셀러를 달성한 히트곡들. || TMN 해산 이후 [[1993년]] 말부터 개인용 스튜디오를 3채[* 이중 마지막으로 세워진 하와이 호놀룰루의 [[http://www.sonymusic.co.jp/Music/International/Special/BlaqueIvory/report_h/index.html|TRUE KISS DISC STUDIO]]는 통 제작비 '''1,20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액수가 투입되었다. 1999년 완공 당시 미국 내에서도 고급 스튜디오 중 하나로 인식되었으며, 코무로 테츠야의 스태프들이 [[리한나]], [[닥터 드레]], [[story of the year]] 등의 밴드들과 작업하기도 했다. 이 스튜디오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니 뮤직 산하 TRUE KISS DISC 레이블과 연관이 있었으나 어쩐 일인지 이후 에이벡스에 팔아치워서 오늘날에는 에이벡스 호놀룰루 스튜디오가 되어버렸다.]나 세우고 믹싱 스탭들을 [[런던]] 등의 해외로 보낸 뒤 언제 누구와도 작업이 가능하게끔 환경을 정비하고 작곡에 밤을 새는 등 철저하게 제작 활동을 시작한 코무로 테츠야는 본격적으로 본인의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1993년]] 그가 프로듀싱한 에이벡스 1호 혼성 그룹 [[TRF]]가 '[[EZ DO DANCE]]'를 히트시킨 것을 시작으로, [[1994]]년에는 솔로 여가수 [[시노하라 료코]]가 '[[恋しさとせつなさと心強さと]]'로 여성 솔로 최초 2밀리언을 기록하였고 솔로 여가수들의 활약이 매우 두드러지기 시작한 [[1995년]]에는 [[아무로 나미에]]와 [[카하라 토모미]]가 그야말로 폭발적인 사회 현상을 일으킬 정도로 히트하여 당시 여성들의 우상으로 단숨에 떠올랐다. 뿐만 아니라 지원을 받은 소속사 [[에이벡스]]로부터 '''확실히 히트해야 한다'''라는 오더를 받고 직접 멤버로 참여하여 시작한 그룹 [[globe]]는 진짜로 히트하여 최초로 앨범 판매량 '''400만 장을 넘겼다.''' 코무로는 당시 인터뷰에서 [[globe(앨범)|이 앨범]]에 대해 "제 음악 활동 중에서 얻은 모든 것을 투입했습니다. 처음 0초부터 57분 03초까지 앨범의 어디를 잘라내어 들려주더라도 부끄러운 곳은 없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게 90년대 중반 수많은 밀리언 셀러 및 히트를 시켜 '''코무로 사운드'''라는 단어를 탄생시켰고 그야말로 '''코무로 붐'''을 일으켜 어린 시절부터 꿈이었다는 '사회 현상'을 만들어내었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 코무로가 프로듀스한 곡이 4년 연속으로 레코드 대상을 독점하고 [[1996년]]에는 오리콘 주간 싱글 차트에 프로듀스 곡이 톱5을 독점하는가 하면, [[1997년]]에는 세금만 11억 7천만엔을 내고 고액 납세자 전국 4위에 이르렀다. 이 시기 코무로 테츠야가 프로듀스한 음반의 총 판매량은 1억 7천만 장에 이른다. 그가 프로듀스하는 아티스트들을 통틀어 '코무로(속칭 TK) 패밀리', '코무로계'라고 불렀다. 코무로 붐이 종막으로 달려갈 때쯤인 [[1998년]] 데뷔한 tohko, 미쿠 레이카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같은 해 데뷔시킨 [[스즈키 아미]]는 한때 하마사키 아유미와 라이벌 구도를 이루며 2장의 밀리언 앨범을 달성하였다. 이 시기 코무로는 일본 대중음악계의 대표주자로서 세계에서 활약하였다. 1998년 전자음악계의 거장 "[[장 미셸 자르]]"와 함께 프랑스 월드컵을 기념해 "Together Now"라는 곡을 공동으로 작곡하였고 폐막식을 기념하는 콘서트를 자르와 함께 [[에펠 탑]]에서 열어 나중에 [[Electronic Night]]라는 이름으로 실황음반과 DVD를 발매하였다. 또한 양자의 스케줄 문제로 실현되지는 못하였지만 [[마이클 잭슨]]과의 공동 작업/공동 공연을 타진하였고,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영화 산드라 블록의 'SPEED 2'의 메인테마와 뮤직비디오 주인공으로 채택되었다. 또한 [[루퍼트 머독]]과 합작한 기업 'TK NEWS'를 설립, 중화권에서도 음악 사업을 전개하여 대만에서 코무로가 프로듀스한 가수 Ring이 [[https://allabout.co.jp/gm/gc/293337/|대만 차트에서 4주간 1위하는 성과를 내었다]]. 이 시기의 코무로는 스스로 "당시엔 주로 80점~90점의 곡을 만들어야한다는 생각으로 계속 쫓기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빨리 이것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자신이 하고싶은 것과 일본 시장이 차이가 났었기 때문에 이 시기가 끝나서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고 자신의 시대를 하나의 붐으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한다. 다른 곳에서는 90년대를 회상하며 "4일에 1곡을 작곡했었다", "수많은 기록들이 기쁘지 않은건 아니었으나 전혀 실감되지 않았다", "돈을 스스로가 얼마만큼이나 썼는지 몰랐었다. 완전히 [[벌거벗은 임금님]]이었다"고 얘기했다. 이후 코무로 패밀리의 가수들이 활동을 축소하고 [[우타다 히카루]], [[하마사키 아유미]], [[MISIA]], [[시이나 링고]] 등이 떠오르는 등 복합적 요인에 따라 코무로 붐은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하였다. 코무로 붐의 종막에 대해서는 "그건 자연스레 왔었죠. 제 안에선 [[우타다 히카루]]씨가 나왔을 때 '새로운 시대가 왔구나'라고 느꼈습니다"라고 얘기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